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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뉴스

광명동굴 역사의 산증인 88세 장원화 어르신을 만나다

인터뷰 : 광명동굴 명예해설사 장원화 어르신

  • 기자명 시민필진 정현순
  • 승인 : 2016.08.22 11:29
  • 수정 : 2016.08.2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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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이 이렇게 달라진 모습을 보고 어찌 다 말로 옮길 수가 있겠어. 감동이고 고맙고, 신기하고 자랑스럽고, 감회가 새로워. 가학산에는 산신령님이 있을 거야.  그렇지 않고야 이렇게 좋은 모습으로 만들 수가 없지.”

그 말 한마디에 어르신의 마음이 어느 정도라는 것을 감히 미루어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어느새 어르신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와 눈가가 촉촉해지는 듯했다. 아마도 지난 몇 십 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생각나서 일 것이다.

지난 4일, 외출금지령이 내릴 정도로 폭염이 계속되던 날 장원화 어르신을 광명동굴 방문자 센터에서 만났다. 옥길동이 자택이신 어르신은 광명동굴을 오려면 버스만 3번 타고 오신다고 했다. 하루 왕복 6번인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푹푹 찌는 날씨에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어르신은 출근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장원화어르신은 1929년생(호적엔 1931년)으로 1950년대에 광명동굴에서 18년간 근무를 했었다. “난 광명시 옥길동에서 태어나 아직 광명시를 떠난 본적이 한 번도 없지. 내가 26살에 군 제대를 하고 난 후 바로 광명동굴에서 18년간 근무를 했어. 군에 있을 때 상급자가 광명동굴을 가자고 해서 왔더니 내가 할 수 있는 기계가 있었어. 상급자가 나에게 기계를 다를 줄 아냐고 묻기에 할 줄 안다고 했더니 바로 일하라고 했지. 그땐 군 복무 중이었으니깐 제대 후 바로 이곳에 와서 일을 하기 시작했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또박 또박 그때의 일들을 이어간다.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어서 대우가 아주 최고였지. 일거리도 많았고, 월급도 많이 받아 아주 재미있게 일했어요. 그땐 이 광산이 아주 잘 되었거든. 사업장을 점점 확장을 해기도 했으니깐.  큰 광산이라도 해도 200명 정도였는데 이곳은 작은 광산이지만 직원이 600여명이나 되었으니깐 그만큼 잘 돌아갔다는 얘기지” 라고 말했다.

이쯤해서 궁금해졌다. 그렇게 잘 돌아가던 광산이 왜 문을 닫았고 장원화 어르신은 왜 그만 두어야만 했는지.

“1972년 여름밤이었어. 광산에서 금괴 등을 캐고 파낸 모래를 쌓아놓았는데 큰 비에 그 모래들이 주변의 논과 밭 몇 천 평을 덮어버린 거야. 추수를 앞둔 농부들이 죽네 사네하고, 광산에서는 보상을 해주어야 하는데 워낙 큰 액수라 사장이 그만 도망 가버렸지. 그래서 그곳의 직원들도 일자리를 잃게 된 거야. 지금도 이곳에는 금, 은, 동, 아연 등이 무진장 많이 있을 거야. 한창 재미있게 그런 것들을 캘 때 그런 일이 생겼으니” 하며 적잖은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무도 사용할 줄 모르는 기계를 어떻게 배우게 되었을까?

“내가 16살 때이니깐 1945년 광복이 되기 한 해 전인가 봐. 그때 내가  중학교를 못 갔어. 그 대신 일본 기술양성소에서 1년 동안 기술을 배우게 되었고 17살 되던 해에 광복이 된 거지. 참 그 시절은 힘들고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잘 참아내니깐 오늘 같은 좋은 날이 왔네. 꿈만 같은 일들이야.”하며 잠시 회상에 젖는듯 했다. 어르신이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3~4년 되었고 일주일 중 목,금,토 3일만 일한다고 한다.  참 운도 따르고 복도 많으신 어르신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폐광이 되었던 동굴을 이렇게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을 줄 누군들 알았겠어. 그뿐이야 하루에 2~3만 명이 오는 특별한 관광지가 되었지. 또 수많은 사람들이 밥 벌어먹고 살고 있잖아.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어. 처음에는 안 좋은 소리도 들려왔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지.”하며 흐뭇해 하는 모습이다.

끝으로 어르신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서를 잘 지키지만 아주 일부분의 사람들이 동굴안에서 흡연을 한다거나 침을 밷거나 음식을 먹는 데,  동굴에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손주가 할아버지에게 옛날이야기를 듣듯이 아주 편했다. 광명동굴 구석구석을 알고계시는 어르신은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난 이곳 광명동굴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계신 것이다. 본인이 직접 겪은 일이기에 한 치의 의심도, 꾸밈도 없이 진실이 전해졌다.

어르신은 우리나라 오천만 동포가 모두 이곳을 봤으면 좋겠고,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희망을 전해주었다. 어르신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하게 광명동굴을 지켜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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