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시간은 4월의 끝자락으로 달려간다. 느린 걸음으로 와도 좋으련만 봄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사실 봄다운 봄이 없다. 꽃피는 4월의 청명한 하늘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중국과 몽골의 봄철 불청객인 황사가 아닌데도 미세먼지 탓에 하늘이 희뿌연하다.
길거리 다니는 사람들은 큼직한 얼굴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었다. 5월을 앞두고 기온이 쭉쭉 오르고 있다. 예전 같으면 오뉴월의 날씨가 요즘에 나타난다. 봄의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고 하지만 지금은 종잡을 수가 없다. 매화와 산수유의 뒤를 이어 피던 꽃들도 급하게 피고 진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경쟁하듯이 피고 졌다. 화려한 벚꽃은 어느새 꽃비가 되어 땅바닥에 눈처럼 쌓인다. 벚꽃은 그래서 두 번 피는 것이다.
벚꽃이 끝난 자리는 조팝나무가 하얀 꽃장식을 하고 있다. 박태기의 꽃망울도 터질 것 같이 부풀어 올랐다. 그 사이 나무의 잎눈도 새록새록 돋아나고 산이 연초록으로 물들고 있다.
신록의 계절은 오월이 되어야 시작인데 기후 변화로 4월 끝자락에 숲이 초록으로 물든다.
이맘때 숲을 보면 고교시절 교과서에서 공부했던 수필가 이양하 선생의 <신록예찬>이 떠오른다.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 연초록의 숲을 보고 이보다 더 멋진 표현이 가능할까?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의 연초록의 숲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숲은 초록으로 변신을 서두르고 풀꽃들도 봄꽃은 지고 여름에 피는 꽃들이 속속 고개를 들고 있다. 봄철의 귀염둥이 깽깽이풀은 늦둥이만 불꽃을 태우고 각시붓꽃과 금붓꽃이 화려하게 등장한다. 조개나물도 솜털을 자랑하며 당당한 포즈를 취한다. 지금 피는 꽃들은 큼직하다.
홀아비 꽃대도 쑥쑥 솟아 오르며 옥녀꽃대를 찾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광명지역의 산에는 옥녀가 없다. 꽃이 피었던 땅바닥에 풀숲이 우거지고 있다. 덩달아 나뭇잎의 초록도 짙어지며 숲은 하나씩 속살을 감추고 있다. 산의 숲은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 연두색의 산줄기에 점점이 박힌 산벚꽃의 하얀 점들이 한폭의 수채화이다.
이양하 선생이 5월을 희망의 계절로 묘사한 <신록예찬>을 다시 들여다 본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이제 꽃보다 초록의 계절이다.
꽃비가 되어버린 벚꽃과 함께 봄날이 간다. 4월이 끝나가고 ‘계절의 여왕’ 오월이 눈앞에 있다. 도덕산, 구름산, 가학산, 서독산을 걸으면서 아름다운 연두색 향연에 눈이 호사를 누린다. 싱그러운 신록의 계절이다. 다가오는 오월에는 희망의 노래를 불러보자.